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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자기 소개 후) 저희 7조에서는 제 1차 세계대전의 배경과 원인에 대해서 발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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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 대전은 1914년부터 1918년까지 4년 4개월간 지속된 전쟁으로, 최초의 세계적 규모의 전쟁입니다. 위 사진에서 연합국은 초록색, 동맹국은 주황색, 그리고 중립국은 회색입니다. 

연합국에는 영국, 프랑스, 러시아가 있습니다. 

동맹국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독일, 터키가 있습니다. 제 1차 세계대전에 대한 소개는 이 정도로 하고, 이제 전쟁의 배경과 원인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차대전의 원인들로 흔히 지목되는 것은 군국주의, 동맹관계, 제국주의, 민족주의(Militarism, Alliances,Imperialism, Nationalism)입니다. 이러한 원인들의 앞 글자를 따서 메인(MAIN)이라고 불립니다. 어느 하나가 원인이라기보다는 이러한 원인들이 연쇄적으로 반응하여대규모 전쟁을 촉발시켰다고 봐야 하겠습니다.

어떻게 해서 제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까요?

무엇이 원인이었는지, 또 그 배경에는 어떤 것들이 존재하는지 한번 알아 보겠습니다.

제 1차 세계대전의 정치적 원인으로 가장 뚜렷이 드러나는 것은 바로민족주의였습니다.

민족주의는 반봉건적 정치이론으로 왕이나 일부 특권층에 속한국가를 민족의 것으로 바꾼 것입니다.민족주의는 18세기 프랑스 대혁명을 통해 발전하였습니다. 이때 프랑스에서의 민족주의는 애국심으로 혁명을 일으키고 이를지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18세기 이후에 민족주의는 민족국가의 이익을 위해 다른 약소국가를 침략, 지배해야 한다는 제국주의로 변질되었습니다.

발칸 반도(Balkan peninsula)는 유럽의 남동부에 있는 반도입니다. 위 화면에서 연두색 부분을 말하는데요, 보통 그리스, 알바니아, 불가리아, 터키의 유럽 부분, 그리고 구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일부였던 나라들이 발칸 반도에포함됩니다.

발칸 반도는 게르만 민족과 슬라브 민족이 같이 존재하는 곳으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위험한 분쟁 지역이기 때문에 유럽의 화약고라불리고 있었습니다.

발칸 반도는 제국주의 열강, 특히 러시아와 오스트리아가 진출하고 있었습니다.(엔터) 러시아는 범 슬라브주의를 내걸고 슬라브계 민족을 선동했으며,(엔터) 한편 오스트리아는 그것을 겁내서 독일의 지지 하에 범게르만주의를 주창하여 이에 대항하게 됩니다.제국주의 열강은 발칸지역에서 자국의 세력 확장을 위하여 대립을격화시키게 되었습니다.

제 1차 세계대전의 두 번째 원인은 제국주의입니다.

서양의 강대국들이 약소국을 무력으로 침략해서 식민지로 지배하려는정책이나 사상을 제국주의라고 하는데,

이러한 제국주의의 물결을 타고 여러 국가들이 경쟁적으로 식민지를건설하게 됩니다.

위 지도는 1914년의 아프리카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프랑스, 독일, 영국 등의 제국주의 열강에 의해 아프리카가 잘게 나눠진 모습을볼 수 있습니다. 이디오피아와 리비아를 제외한 아프리카 대륙 전체가 유럽의식민지하에 놓였습니다.

다소 늦은 근대화와 통일로 인해 뒤쳐져있던 독일이 식민지 확보에나서자 영국의 방해를 받았습니다.대표적인 제국주의 국가였던 영국은 이미 세계곳곳에 식민지를경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하지만 독일은 기존 열강들의 세력권이나 이권을 무시하면서파고들게 됩니다.

독일은 아프리카와 인도양의 확보를 위해 비잔티움과 바그다드 간의철도 부설권을 따내고 이를 베를린과 연결하는,이른바 3B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려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독일의 방향은 영국의 케이프타운 식민지와 카이로, 인도의 콜카타를 연결하는 3C 정책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었습니다. 유럽의 국제적 불안을 세계대전으로까지 몰고 간 중요한 요인은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제 1차 세계대전의 또 다른 원인은 동맹 관계입니다.

유럽국가들간의 동맹은 서로간의 안보를 지켜주고 동맹 측의 한나라가 공격을 받거나 공격을 할 때 자동으로 상대편 국가에 전쟁을 선포하는 식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이는 국가의 안전을 보장하는 방편으로 이용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동맹국 중 한 나라가 전쟁에 참가하면 다른국가들도 전쟁에 참전할 수밖에 없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프랑스를 고립시키고, 러시아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독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는 3국 동맹을 맺었습니다.(엔터)

그리고 독일이 팽창하자 주변 국가인 러시아와 프랑스가 긴장하게되고 두 나라는 1894년에 동맹을 맺게 됩니다. 한편, 영국은 독일의 세력이 자신의 세력권까지 파고들자 위협을 느끼게됩니다. 그리하여 영국은 1904년에 프랑스와 동맹을 맺고,(엔터) 1907년에 러시아와도 동맹을 맺음으로써 영국/프랑스/러시아 3국 협상이 성립되었습니다.(엔터) 이렇게 해서 독일을 중심으로 하는 3국 동맹과 영국을 중심으로 하는 3국 협상이 날카롭게 대립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1907년경 유럽의 강대국들은 3국 동맹과 3국 협상의 두 진영으로 나뉘어 있었고, 상호 동맹에 소속된 국가 간에 전쟁이나 분쟁이 발발하면 다른모든 강대국들이 자동으로 말려들게 되어 있는 구조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런상황에서는 조그만 불씨 하나로도 큰 전쟁이 터질 수 있는 불안한 상태였습니다.

4번째, 마지막 원인으로 군국주의를 꼽을 수 있습니다. 군국주의(軍國主義)는 강한 군사력을 국가의 주된 목표로 삼고, 전쟁에 대한 준비를 우선시 하는 것입니다.

제 1차 세계대전 이전의 서양 국가들은 서로 많은 식민지를 보유하기위해 다퉜습니다. 그리고 자국의 식민지를 다른 열강에게서 빼앗기지 않기 위해군사력을 점점 더 높여갔습니다.

특히 독일은 대양해군을 주장하고 함대법을 제정하여 영국과 군함건조경쟁을 벌이고 적극적인 해외시장 개척과식민지 확장 등으로 주변국들의 위기감을 높여갔습니다.

프랑스, 러시아 등 주변국들의 군비경쟁도 가속화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전쟁의 배경과 원인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그렇다면 전쟁이 일어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수도인 사라예보에서 발생한 ‘사라예보 사건’입니다.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황태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과 그의 아내인 호엔베르크 소피아 황태자비가 사라예보에 친선 방문하게 됩니다.

황태자 부부는 세르비아의 참모본부 정보부장이 밀파한 7명의 자객 가운데 한 명, 가브릴로 프린치프의 흉탄에 맞아 피살됩니다.

세르비아계 보스니아인인 프린치프를 비롯한 남슬라브주의자들은 보스니아가 독립하여 세르비아와 합치는 것을 원했습니다. 하지만 세르비아가 러시아 제국의 지원을 받으며 남슬라브 운동을 은근히 부추기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이 사건을 구실로 세르비아와 전쟁을 결심하게됩니다. 

오스트리아는 7월 23일, 세르비아에 최후통첩을 보냈으며 그것이 거부되자, 즉각 세르비아와 국교를 단절하고 이어 28일에 선전포고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8월 1일과 2일에 독일이 러시아와 프랑스에 각각 선전포고를 하였으며 8월 4일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하고, 영국이 독일에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마치 도미노처럼 일어났습니다.

이렇게 해서 세계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가게 됩니다. 

과도한 민족주의와 자본주의의 합작으로 이루어진 산물이라 할 수있는 제국주의는 19세기 후반 20여년 간 격화되어 약소 후진국과 민족을 희생양으로 삼는 한편, 제국주의 국가들 상호간의 이해관계에 따라 협상과 동맹을 맺어 두집단으로 대립하게 되어 결국 제 1차 세계대전이라는 사상 유례없는 대(大)참극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참고 문헌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금까지 제 1차 세계대전의 발생 배경과 원인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감사합니다.

레고 사진 출처: http://www.flickr.com/photos/12426416@N00/2936384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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